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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

s0mersault 2022. 11. 13. 18:36

p90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원리는 다르다. 사실 그 다름은 뉴턴역학과 해밀턴역학의 차이와 비슷하다.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앨런 튜링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0'과 '1'의 비트로 표현된 데이터를 하나씩 읽어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순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계를 튜링기계라 한다. 이 순차적 작업 리스트가 알고리즘이고, 이것을 만드는 과정이 코딩이다. 튜링기계는 수학이 하는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컴퓨터는 정확히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튜링기계인 컴퓨터는 뉴턴의 기계적 인과율에 따라 작동된다. 한순간 하나의 비트를 읽어서 명령어에 따라 시간 순서로 철컥철컥 일을 처리한다. 튜링보다 앞서 비슷한 아이디어를 생각한 사람은 찰스 배비지였다. 배비지는 실제로 톱니바퀴를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기술로는 그런 정교한 기계장치를 만들 수 없었다. 컴퓨터는 뉴턴역학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기계다. 여기에 의도 따위는 없다. 알고리즘에 따라 미분방정식으로 기술된 자연법칙처럼 다음 순간을 향해 발을 내디딜 뿐이다. 미래는 모두 다 결정되어 있다.

인공지능은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다. 신경망은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모방한 것이다. 뇌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들로 구성된다. 뉴런은 신호를 전기적으로 전달하는데, 보통 수천 개의 다른 뉴런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 사이의 연결 부위는 그냥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연결의 세기가 변할 수 있다.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연결 부위가 갖는 세기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연결 세기를 조정하여 기억을 만드는 과정을 학습이라 한다. 뇌의 이런 특성은 인공신경망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신경망도 학습을 할 수 있다. 학습이란 정해진 입력에 대해 원하는 출력이 나오도록 연결 세기를 조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최소작용의 원리와 같은 사고방식이다.

p93

그렇다면 생명이 보여주는 생존의 욕구, 더 많은 자손을 남기려는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현재 우리가 가진 과학적인 답은 '진화론'이다. 진화에는 의도가 없다. 주사위 던지듯이 무작위로 모든 가능성이 펼쳐진다. (..)

원자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은 뉴턴역학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양자역학에서는 더 이상 뉴턴역학과 같이 결정된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과율이 깨지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인과율의 지배를 받는 것도 아니다. 뉴턴역학에서는 물체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으나 원자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양자역학이 불가지론은 아니다. 특정 위치에서 원자가 발견될 확률은 알 수 있다.

확률만을 알려준다는 것은 생명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양자역학적 결과는 우연이 지배한다. 주사위를 던지면 어느 숫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1'이 나왔다면 '1'이 나온 이유 따위는 없다. 그냥 우연이다. 하지만 우리는 '1'이 나온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자크 모노의 생각은 이렇다. 생명현상도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물리법칙은 원자 수준에서 확률만을 알려준다. 생명도 이 확률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왜 특정 사건이 일어난 것인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소설에서 헵타포드는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본다. 마치 해밀턴역학의 물체가 모든 가능성을 한꺼번에 펼쳐놓고서 최선의 결과를 찾아가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헵타포드는 왜 사는 걸까? 소설의 주인공은 헵타포드를 만난 후 그들의 언어를 알게 된다. 그들의 언어를 익혔다는 건 미래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주인공은 그의 옆에 있는 연인이 언젠가 그를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태어날 아이가 병으로 일찍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살아간다. 그들을 사랑하며 현재를 산다. 미래를 다 아는 존재에게 현재를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소설에서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대화가 되었든 헵타포드는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p100

뉴턴역학은 왜 결정론으로 귀결될까? 법칙이 존재한다고 늘 결정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진화론'이라는 자연법칙은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다. 뉴턴역학의 결정론적 성격은 그 수학적 구조에서 기인한다. 바로 미분방정식이다. 어느 한 순간의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다음 순간의 위치와 속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다.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로봇을 생각해보자. 이 로봇은 한 발씩 반복하여 내딛어서 어디든 갈 수 있다. 뉴턴법칙이 기술하는 우주는 이렇게 스스로 굴러간다.

(..) 100번째 위치는 분명 결정되어 있는데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정되어 있으니 누가 하든 차례차례 계산기로 두들겨보면 동일한 숫자를 얻는다. 내일 계산한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미묘한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정해져 있는데 알 수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우리는 종종 '동전 던지기'로 운명을 결정한다.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전이 손을 떠나는 순간 결과는 정해진다. 뉴턴역학의 결정론이다. 그런데 왜 결과를 모를까? 중력하에서 날아가는 물체의 운동에 불과한데 말이다.

(..) 카오스를 보이는 물리계는 초기조건의 작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나비효과'다. 동전을 던질 때 앞면인지 뒷면인지를 예측하려면 동전이 손을 떠나는 순간 동전의 초기조건을 알아야 한다. 동전의 위치, 속도, 동전이 기울어진 각도 등이 그것이다. 뉴턴방정식은 이 초깃값들에서 시작하여 한 발짝씩 움직여 최종적인 결과에 이른다. 만약 최종 결과가 초기조건에 따라 대단히 민감하게 변한다면 어떻게 될까? (..) 카오스는 초기조건에 지수함수적으로 민감하다. 초기조건이 눈곱만큼만 바뀌어도 그 효과는 금방 은하계의 크기로 커질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동전 던지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 100경분의 1미터의 정확도로 초기 위치를 알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p103

카오스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간단한 법칙에서도 예측 불가능한 복잡함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함의 근원이 반드시 복잡함일 필요는 없다. 동전 하나를 던지는 것에서도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함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동전 100만 개를 한꺼번에 던지면 어떨지 생각해보자. 100만 개 가운데 하나의 동전이 어떻게 될지를 추적하는 것은 하나의 동전만 던졌을 때보다 훨씬 더 예측이 어렵다. 100만 개의 동전들이 서로 충돌하며 더욱 복잡한 운동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각도로 보자. 100만 개 동전을 일일이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동전들의 '분포'를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초기에 100만 개의 동전을 모두 앞면이 되도록 하고 동시에 던져보자. 동전들은 서로 부딪히며 복잡한 운동을 할 테니 장관일 것이다. 결과에 대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누가 하든 상관없이 대략 50만 개는 앞면, 50만 개는 뒷면이 나올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동전들의 초기조건에 큰 상관 없이 이런 결과가 나온다. (..)

동전의 숙 많으면 많을수록 평균에서 벗어나는 사건의 비중이 점점 작아진다. 이렇게 우리는 통계물리학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 아이러니하게도 카오스가 통계적 예측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카오스가 있다면 초기조건에 상관없이 동전들은 결국 '50대 50'이라는 통계적 결과로 간다. 이제 우리는 예측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자연이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 법한 상태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열역학 제2법칙'이라 부른다. 이 과정을 정량적으로 표현하면 "엔트로피는 증가할 뿐이다"가 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진행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 카오스가 일어나고 있으며, 지수함수적으로 빠르게 초기조건에 대한 정보가 사라진다. 그래서 엔트로피는 무지의 척도다. 통계적 상태에 도달하면 초기조건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이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 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p112

과거에서 미래로 간다는 것은 결국 상태를 이루는 경우의 수가 작은 상황에서 많은 상황으로 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경우의 수'에 '엔트로피'라는 이상한 이름을 주면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라는 멋진 문장으로 바뀐다.

p114

우주의 큐브는 처음에 누가 맞춰놓은 걸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점점 엔트로피가 작아져서 결국에는 엔트로피 0의 상태, 단 하나의 가능성만 있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우주가 한 점에서 출발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빅뱅이다. 빅뱅은 천문학적인 관측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엔트로피와 시간의 방향을 생각해보면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기도 하다. 빅뱅이 왜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빅뱅이 없었으면 시간이 미래로 흐를 수 없다.

 

p118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도 않고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내 이름은 빨강』)

p126

하이젠베르크는 자전적 에세이 『부분과 전체』에서 어린 시절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플라톤과 결별한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 즉, 측정이 대상에 변화를 일으킨다면 전자의 정확한 위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측정의 부정확성이나 오차가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다. 누구도 전자에 교란을 주지 않고 위치를 알아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이데아를 이야기하는 것은 물리가 아니다. 결국 원자의 세상에서 우리는 대상에 대해 모든 것을 완벽히 알아낼 수 없다.

(..) 그렇다면 전자가 입자로 되는 동안 전자의 파동은 어디 갔을까? 전자의 위치를 측정할 때마다 전자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결국 전자의 파동이란 전자가 여기저기서 발견될 확률을 의미한다.

전자가 특정 위치에서 발견될 확률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측정할 때마다 전자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결과를 모아보면 슈뢰딩거 방정식이 예측하는 확률분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뜻이다. 주사위 던지기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매번 무작위로 숫자가 나오지만 모아보면 각 면이 나올 확률은 정확히 6분의 1이다. 이런 의미에서 양자역학은 완전히 모른다는 의미의 불가지론이 아니다.

 

Contraria sunt Complementa

 

p159

그렇다면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 지구와 달 사이에도 중력이 작용한다. 따라서 달도 지구로 떨어진다. 달이 낙하한다고? 사과를 야구공 던지듯 수평으로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다. 지구가 편평하다면 사과를 아무리 세게 던져도 결국 바닥에 떨어질 거다. 하지만 사과가 낙하하는 거리만큼 땅바닥이 덩달아 밑으로 가라앉으면 사과는 바닥에 닿지 않을 수 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날아가며 낙하한 거리가 (지구가 둥글어) 내려앉은 거리와 일치한다면 말이다. 달이 낙하하지만 바닥에 닿지 않는 이유다.

 

p162

질량이 있으면 주변에 중력장이 존재한다. 마치 거미가 있으면 주위에 거미줄이 있는 것과 같다. 달은 지구를 직접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만든 중력장을 느낀다. 질량이 움직이면 중력에 변화가 생기며 이 변화는 중력장의 진동으로 전달될 것이다. 그 진동의 이름은 '중력파'다. 2017년 노벨물리학상은 중력파를 실제로 관측한 과학자들에게 수여되었다. 중력파란 정확히 무엇이 진동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앞서 이야기한 두 번째 질문을 생각해야 한다.

뉴턴의 운동법칙 F=ma 에는 세 개의 알파벳이 등장한다. 힘(F), 질량(m), 가속도(a)다. 뉴턴에 따르면 이 수식은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해석된다. 물체에 힘을 가하면 가속된다. 속도가 바뀐다는 의미다. 같은 힘에 대해 질량이 클수록 가속은 작다. 문제는 왜 질량이 여기 있냐는 것이다.

지하철이 설 때 몸이 앞으로 쏠린다. 정지해 있던 몸이 앞으로 쏠린다는 것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이니 가속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력이나 전자기력같이 나를 앞으로 미는 힘은 없다. 그렇다면 이 가속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가 탄 지하철의 속도가 줄어들면 나의 속도도 줄어든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지하철은 멈추고 나는 계속 달려서 지하철의 통로문에 부딪히게 될 테니까. 지하철이 설 때, 내가 느끼는 속도의 변화는 외부의 힘에 의한 것일까? 하지만 여기에 힘은 없고 단지 지하철이 정지하고 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이 등장할 차례다.

가속되는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는) 힘을 느낀다.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며 해석해보자. 그 사람이 느끼는 가속도에 질량을 곱하여 힘을 얻는다. 결국 이 힘은 질량이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질량이 만드는 힘은 중력이다. 결국 운동법칙에 질량이 등장하는 이유는 가속되는 사람이 느끼는 힘이 중력과 같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등가원리'라고 불렀다. 가속과 중력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필요하다. 정지한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 다르다는 의미다. 멈추는 지하철을 다시 생각해보자. 지하철이 멈추는 동안 나의 속도도 점점 줄어든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속도가 있는 사람은 정지한 사람과 시공간이 다르다. 속도가 점점 줄어들면 시공간의 다른 정도가 점점 변할 것이다. 가속되는 동안 시공간에 연속적인 변형이 생긴다는 말이다. 둘레길이가 연속적으로 변하면 콜라병과 같이 휘어진 곡면이 만들어지듯이 시공간이 휘게 된다. 등가원리에 따르면 가속은 중력과 구별되지 않는다. 결국 중력은 시간과 공간을 휘어지게 만든다. 중력파는 시공간이 휘어지고 변형되며 만들어내는 진동이다.

p167

반면 양의 질량을 상쇄시킬 음의 질량은 존재하지 않기에 질량은 상쇄되는 법이 없다. 질량은 언제나 양의 값을 갖는다. 그래서 중력을 숨길 방법은 없다.

 

p189

만약 입자에서 원자, 화학, 생명, 인간으로 층위가 높아짐에 따라 이전 층위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법칙이 출현한다면, 환원주의처럼 단순히 말하기는 힘들 거다.

(..) 이것들 가운데 원자로부터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모두 창발이라 보면 된다.

환원주의에 대립되는 말로 '전일주의'가 있다.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창발은 전일주의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p194

적혈구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양자역학을 사용하기는 힘들다. 적혈구는 원자가 모여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같은 고분자가 된 것이다. 양자역학을 사용하기에는 이미 너무 크다. 하지만 적혈구 헤모글로빈의 헴에 있는 철 원자가 산소와 결합하는 것은 양자역학이 설명한다. 이렇게 적혈구 수준의 이해에서도 원자 수준의 환원적 설명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적혈구와 다른 수많은 고분자들이 모여 만들어낸 인간을 설명하는 데, 원자 수준의 이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는 전혀 다른 법칙이 필요하다. 하지만 11번 염색체상의 헤모글로빈 염기서열 중 단 하나가 잘못되면 그 사람은 겸형 적혈구 빈혈증에 걸린다. 원자 몇 개의 실수다.

 

p197

원자들은 어떻게 세상 만물을 만드는 걸까? 이런 질문을 탐구하는 물리 분야를 '응집물리'라고 한다.

 

p232

태양이 돈다는 천동설은 내가 기준점이 되는 기술이다. 하지만 기준점이 움직이고 있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런 경우 누가 운동의 기준점이 되어야 할까?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