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p72 이반 일리치를 제일 괴롭힌 것은 거짓이었다. 왠지 모두가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저 아플 뿐 죽어 가는 것이 아니며, 잠자코 치료를 잘 받으면 뭔가 아주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묵인하는 거짓말 말이다. 그는 무슨 짓을 하든 더 괴로운 고통과 죽음밖에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를 괴롭힌 것은 거짓이었다. 즉 모두가 그들 자신도 알고, 그도 아는 사실을 부인해 가며 오히려 그의 끔찍한 처지를 두고 거짓말을 하려 들 뿐 아니라, 그에게마저 거짓에 동참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거짓, 그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 일어나는 저 거짓, 저 무섭고 장엄한 죽음이라는 사건을 병문안과 커튼과 만찬의 철갑상어 수준으로 격하해 버리는 저 거짓이야말로…… 이반 일리치는 괴롭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묘한 노릇이었다. 저들이 그를 두고 저런 소리를 늘어놓으면 거짓말 좀 그만하라고, 내가 죽어 간다는 사실을 당신들도, 나도 알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적어도 거짓말 좀 관두라고 외치기 일보 직전이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호기를 부린 적은 없었다. 그가 보기에 자기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죽어 간다는 이 무섭고 끔찍한 사건을 어쩌다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일정 부분 점잖지 못한 일의 수준으로(마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거실로 들어오는 사람을 대하듯) 격하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한평생 모셔 온 '품위'라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가 생각하기에 아무도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어느 누구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게라심만이 이런 처지를 이해하고 또 가엾이 여겼다. 그래서 이반 일리치는 오직 게라심과 있을 때만 유쾌했다. (..) 게라심만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모든 정황으로 보건대 분명히 그 하나만이 문제의 본질을 깨닫고 그 점을 숨길 필요가 없음을 알았으며, 그저 쇠잔해 가는 병약한 주인 나리를 불쌍히 여길 따름이었다.
(..) 이러한 거짓 말고도, 혹은 그 때문에 더더욱 이반 일리치를 괴롭힌 것은 아무도 그가 바라는 만큼 그를 불쌍히 여겨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기나긴 고통을 맛본 뒤에 이반 일리치는 때때로 이렇게 고백하기가 창피스럽지만, 누구든 자기를 아픈 아이처럼 그저 불쌍히 여겨 주길 무엇보다 바랐다. 아이를 어루만지고 달래 주듯 상냥히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자신을 위해 울어 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턱수염이 허옇게 센 고위 판사에게 아무도 그렇게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쯤은 알았다. 그럼에도 어쨌든 그래 주길 바랐다. 그런데 게라심과 있으면 그 비슷한 뭔가를 느꼈고, 그와의 관계에서 위안을 얻었다. 엉엉 울고 싶고,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울어 주고 어루만져 주길 바랐던 이반 일리치는 법원 동료인 셰베크가 찾아오자 울음을 터뜨리고 다독임을 받기는커녕 곧장 진지하고 엄격하고 고뇌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관성에 따라 상소심 결의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그것을 집요하게 고수했다. 이 거짓,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거짓이야말로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나날을 독살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