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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 CITY THE MOMENTUM in Toronto, Rosemont 후기

s0mersault 2025. 2. 25. 11:10

0. 시작
2024년 11월 5일, NCT 127의 네번째 투어 일정이 발표되었고 일정에는 북미가 포함되었다. 127 북미 투어 따라가보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긴 했지만 최애 한 명도 군대가있고 완전체 콘서트도 아닌 이 시기에 굳이 가는 게 맞나 싶었다. 그런데 이성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워낙 투어 일정 관련해서 잡음이 많았던 127인지라 언제 또 북미를 갈지 모른다는 조급함과 내가 현업에서 일주일의 시간을 뺄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 당장 다가오는 선예매 일정 등에 일단 홀린듯이 티켓팅을 했고 어쩌다보니 나는 가는걸로 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연말 무대들 보면서 칠뽕 다시 점점 올라오고, 1월 고척콘이랑 1.27 데이까지 거치면서 칠랑 맥스 상태가 돼서 결과적으로는 가기로 결정한 게 매우 잘한 일이 되긴 했다.
해투든 뭐든, 덕질하면서 벌이는 미친 짓들은 일단 시작하면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는 것 같다. 처음엔 내가 감당이 될까? 싶던 상상도 못한 일들을 덕심 하나로 극복해나가면서 얻는 도파민이 있는데, 이건 순수 덕질에서 오는 도파민과는 또 다른 종류의 묘한 성취감이 있어서 중독이 된다.
 
1. 티켓 구하기
북미 투어 티켓은 Ticketmaster 사이트에서 예매를 진행했다.
토론토 공연은 사운드체크 이벤트가 포함된 Neo City Perk Ticket(수수료 포함 625.25캐나다달러), 로즈몬트 공연은 Standard Admission Ticket(수수료 포함 209.86달러)으로 구매했다.
토론토 티켓은 선예매로 구했다. 선예매는 [위버스에서 선예매 신청기간에 사전 신청→ 선예매 일자에 연락처로 코드가 전송됨→ 선예매 전용 웹페이지에 코드를 입력해서 입장→ 예매 진행] 의 순서로 이루어지는데, 당일에 아무리 인증을 해도 코드가 전송이 안되는 오류 때문에 오픈 직후에 예매 페이지에 입장을 못했다.
예매 확인 메일이 온 시간을 보니 한국시간으로 06:39... 아마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오류가 해결되어서 입장이 되었던 것 같고 스탠딩은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남아있는 좌석 중 그나마 가까운 사이드 앞열을 선택했다. 비교적 좋은 자리는 사운드체크 이벤트가 자동으로 포함된 좌석이라(한국 공연에서의 VIP 좌석과 같은 개념), 사첵을 꼭 보고싶다기 보다는 일반 좌석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비싸니까 그래도 그 값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카고는 원래 갈 생각이 없었다. 고척 공연 갔다오고 나서 이 공연을 한번만 더 보는 건 너무 아쉬워서 미국 공연을 한 군데 더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알아봤는데, 뉴어크와 로즈몬트가 일정이 가능했다. 뉴어크는 공연장 인근 지역이 위험한 동네라는 말이 있고, 시카고는 쟈니's 시티라는 점을 고려해서 로즈몬트를 택했다. 항공권을 예매하고 보니 겨우 반나절 정도의 여유시간이 생겨 도시를 둘러볼 생각으로 시카고에 대해 좀 더 알아봤는데, 생각지도 못한 내 취향 저격 여행지였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하루라도 더 숙박을 할 걸 싶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동생들 보는거니까 욕심을 버리고.
일본 외에 다른 해투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북미 티켓은 구매 후 취소가 불가능하다. 티켓 프리미엄 거래가 일반화되어 있어서 예매 페이지에서 리셀 거래를 동시에 진행하는 시스템으로(티켓마스터에서는 프리미엄 포함된 리셀 티켓의 경우 좌석을 누르면 'Official Platinum ticket'이라고 뜬다), 구매한 티켓을 다시 리셀할 수는 있는데 이것도 공연마다 정책이 달라 내가 예매한 공연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후진 안되는 차를 눈감고 벽에 갖다박는 심정으로 모든 일을 추진했다. 비용이든 일정이든, 순수한 내 의지만으로 밀어붙이기엔 나의 상황에서 다소 무리스럽고 무모한 도전이었는데 '그래 취소가 안되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핑계를 통해 추진력을 얻었달까.
 
2. 여행 준비

  • 12/18 인천-토론토 항공권 예매 → 1/22 토론토-시카고 항공권 예매 → 2/16 시카고 호텔 예약
    : 토론토행 티켓은 에어캐나다, 토론토-시카고 티켓은 포터항공(캐나다 저가항공사), 시카고-토론토 티켓은 유나이티드 항공(에어캐나다 제휴 항공편)을 이용했다. 내가 타야 할 비행기가 총 4대라 출발시간도 너무 헷갈리고, 토론토/시카고 모두 출국하는 공항과 입국하는 공항이 달랐으며 항공사마다 체크인이나 수하물 등 세부 규정이 다 달라서 이것도 머리 아팠다.
    : 에어캐나다는 동생이 진짜 별로라고 했는데 난 너무 괜찮았다. 컨텐츠 라인업도 좋더라. 콘클라베 보고 싶었는데 이건 내가 영자막만으론 소화를 못할 것 같아서, 상대적으로 가볍게 볼수 있을것 같은 <리얼 페인> 봤다. 근데 가볍게는 아니고 겁나 몰입해서 울면서 봄. 밥은 난 원래 전투식량, 군용식량같은게 취향이라 주는대로 잘먹음. 그리고 저녁 식사때 디저트로 브라우니를 주는데 이게 너무 맛있어서 오는 비행기에선 챙겨서 집와서 먹었다 ㅋㅋ
    : 포터항공은 저가항공사라 그런지 비행기가 너무 작고 흔들려서 생전 처음으로 비행기멀미라는 걸 해봤다. 내가 예매한 티켓은 basic ticket이라고 4단계 중 제일 낮은 단계의 티켓인데, 수하물을 아예 가져갈 수 없는 옵션이어서 1박 짐을 다 숄더백에 구겨넣고 갔다. 잠옷은 포기했다. 그리고 미국 입국할 때는 캐나다, 미국 여권 소지자만 모바일 체크인이 가능했다.
    : 토론토에서 시카고로 갈때는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는 국내선, 미국행 비행 위주의 빌리비숍 공항에서 출발해서 시카고 미드웨이 공항에서 내렸다. 여기서 다운타운으로 가서(지하철로 4~50분 소요) 시내 관광을 하고 다시 오헤어 공항/공연장 인근의 숙소로 가는(우버로 약 1시간 소요) 동선이었다.
    : 이 네 번의 비행에서 가장 관건은 7:12 시카고 오헤어에서 토론토 피어슨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려서 13:10 한국행 비행기를 안전하게 탈 수 있을 것인가였다. 세시간 정도의 텀이 있었지만 취소나 지연 등 돌발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보려고, 토론토 돌아오는 비행기는 일부러 3만원이나 추가해서 좌석 지정도 앞쪽으로 해놨다(결과적으론 돈낭비). 3/1 출국날 에어캐나다 토론토 출발편이 2시간 40분 지연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동생이 '근데 사실 난 포터가 더 걱정이다. 예전에 그거 타고 시카고 가려다가 눈앞에서 항공편 없어졌던 적 있다. 저가항공이라 보상이고 뭐고 개뿔도 없다'고 얘기해줘서 내 불안감은 극대화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전혀 지연 없이 여유롭게 탈 수 있었다.
    : 시카고 호텔은 공연장과 다음 날 출국할 오헤어 공항에서 모두 가까운 3성급 호텔인 '홀리데이 인 시카고 오헤어'였다. 숙소에서 보낸 시간은 잠자는 시간 포함 채 6시간도 안 되긴 했지만 아침에 공항 가는 셔틀도 30분마다 운행하고, 룸은 히터가 빵빵해서 그럭저럭 괜찮게 있었다. 공연장에서 오고갈때 걸어갈 계획이었는데, 갈때는 너무 지쳐서 우버를 탔고 올때는 우버가 잡히질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걸어왔다. 근데 걸어오는 길이 좀 험난했다. 지하철, 우버 타고 다니면서 아주 잠깐씩 본거지만 시카고는 다른 미국 도시들이 그렇듯이 시내가 아니면 보행자에게 최적화된 길이 아니라, 난 무조건 저쪽 편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아예 없어서 그냥 차가 막 내달리는 4차선을 눈 질끈 감고 무단횡단 해야되고 이런 식이었다.
  • 캐나다 및 미국 입국 시 필요한 전자여행허가 서류인 ETA와 ESTA도 사전 신청했다.  신청 과정은 ESTA가 좀더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전자여권에 자동 연동이 되어서 입국심사할 때 별도로 뭘 제출하거나 할 필요 없고 여권만 스캔하면 확인이 가능하다.
    ETA : 7캐나다달러 / 확정 메일 오기까지 3일 걸림 / 유효기간  발급일로부터 5년
    ESTA : 21달러 / 확정 메일 오기까지 1시간 걸림 / 유효기간 발급일로부터 2년
  • 로밍 : SK 텔레콤 baro 요금제 13gb 사용했고 이번에도 5기가도 채 사용 안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환전 : 캐나다달러 200, 달러 50 해갔는데 1도 안쓰고 고스란히 남겨왔다. 한국 도착해서 공항에서 재환전했더니 손해가 막심했다.

 
3. 토론토 (3/1-3/6)
- 공연 후기
공연 장소는 Scotiabank Arena라고 주로 하키나 농구 경기하는 곳이다. 가보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체조 정도의 사이즈인데, 내 체감상으론 Allstate Arena보다 좀 더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모멘텀이 열리기 약 3주 전인 2/13에 에스파의 토론토 공연이 같은 장소에서 있어서, 에스파 팬들의 후기와 올라온 사진들을 많이 참고했다.
공연 운영에 관해서 할 말이 많다. 나 데려다주려고 같이 따라온 동생도 '이건 좀 아니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내가 특별히 예민한 건 아닐거다. 한국에서는 티켓 예매할 때 아예 예매 페이지에 사운드체크 이벤트 입장 시간과 시작 시간, 일반 관객 입장 시간과 시작 시간 다 타임테이블로 정리해서 올라와있고 공연장 맵이나 굿즈 판매 관련해서도 최소 이틀 전에는 알려준다. 물론 이 정도까진 바라지도 않았지만, 여기는 일단 이런 공지들이 어디로 올라오는지도 모르겠거니와, 공연 임박해서까지 공연장 계정에도 어디에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하루 전날 공연대행사/주관사 트위터 계정으로 공지 이미지 하나가 덜렁 올라왔다. '사운드체크 6시 시작이고 VIP 체크인은 1시부터 할거다' 이건데 체크인이 몇시에 마감되는지(난 스탠딩도 아닌데 1시부터 가서 5시간이나 기다릴 순 없으니까), 사운드체크 입장은 언젠지 이런 건 알 수 없었다. 북미는 아시아에 비해선 간 한국팬들도 많이 없고, 난 덕메도 없어서 대행사 트윗에 달린 인용으로 해외팬들 계정을 추적해서 대충 정보를 긁어모았다. 근데 그들도 나와 같은 처지더라.. 아니 체크인 언제까진데? 비오는데 팔찌도 안주고 이렇게 하염없이 줄 서있어야 됨? 뭐가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이런 트윗들 천지였다.
전날 와인으로 3차까지 달려서 숙취를 매달고 공연장에 4시쯤 도착했다. 체크인을 게이트 1에서 한다고 되어있는데 게이트 앞에는 이미 팔찌 받은 스탠딩 구역 팬들이 줄을 길게 서있다. 체크인 줄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서 물어보는데, 공연장 안내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굿즈가 어쩌고 저쩌고 딴소리 / 굿즈 판매 직원: 나도 몰라..(진짜 몰라보였음. 자기가 지금 무슨 공연 굿즈를 팔고 있는지도 몰라보였음) / 시큐리티 직원들: 체크인 어디서 하냐고 물어보니 머천다이즈 살 사람만 줄서라고 개소리+사운드체크 입장 언제냐고 물어보니까 리허설은 안에서 하고있고 아티스트가 진행하는거라고 개소리(누가 찐 사운드체크 물어봤냐고요.. 사운드체크 이벤트를 하는지 마는지도 모르나봄) 이지랄이라 결국 목걸이 받은 팬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더니 스탠딩 줄서있는 오른쪽 라인 말고 텅텅 비어있는 왼쪽 라인으로 입장에서 체크인하면 목걸이 받을수 있고, 사첵 입장은 자기도 모르겠는데 아마 6시 전까지 들여보내주지 않을까? 나도 좌석인데 저렇게 줄서있긴 싫어서 걍 밖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라고 말해줘서 일단 체크인/본인확인을 했다. 시큐가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서 급한 마음에 무시하고 게이트 안으로 쭉 직진했더니 다른 남자 직원한테 얘 붙잡으라고 성질을 내더라. 그래서 나도 이성을 잃고 아니 나 체크인 해야 된다고!! 이러고 소리 겁나 지름. 도와준 동생을 데리고 급하게 밥을 먹고 5시쯤 다시 돌아왔다. 비오는데 사진도 찍어주고 나 대신 소통도 해줬는데 맛있는걸 못사줘서 미안했다. 동생 없었으면 진짜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었을거다.
입장 기다리면서 봤더니 체크인을 아직도 하고 있었다. 줄 서있던 앞 사람들도, 처음엔 4시반까지라고 했다가 5시까지라고 했다가 그때는 5시도 넘은 시점이었는데 계속 하고 있어서 이게 뭐야? 하더라.
한바탕 난리를 친것 치고는 입장은 아주 스무스했다. 너무 스무스해서 이정도면 표 없어도 들어가겠는데 싶었다(아님)
오기 전에 짐 반입 규정을 찾아봤을 땐 거의 핸드폰 크기의 짐색 정도말고는 허용되는게 없어서 모든 필요한 건 주머니에 다 우겨넣고 응원봉만 띨롱 들고 갔는데 스탠딩 외에는 짐 검사도 안하는 것 같길래 줄 기다리다가 그냥 옆으로 샜다. 그래도 아무도 관심 없음. 게이트 앞에 표 검사하는 직원도 아무도 없음. 공연 관련 직원은 0명인데 청소하는 분들만 20명 되어보임. 내가 8열 정도였는데 내 앞자리에 사람이 듬성듬성 했던 걸로 봐서 사첵도 모두가 필참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본공연 때 내 옆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케이팝 두루두루 좋아하는 즐겜러들이 자기 지인이나 친구, 가족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아보였다. 127에 인생 건 사람들 위주의 서울 공연이랑은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Scotiabank Arena 내부
108구역 8열 본무대 / 돌출 시야

 

"사첵 정우"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숙취 해소가 덜돼서 머리 깨질것같고 피곤 & 공연장이 꽤나 비어있고(앞서 말했듯 사첵 안오는 팬도 많아서 그런거였다) 어수선한 사첵 특유의 분위기 & 끝나고 1시간 넘게 대기를 하는데 뒷자리 중국인들이 너무 시끄러움의 콜라보로 괜히 왔나? 실망하면 어쩌지? 라는 말도 안되는 걱정을 했더랬다. 모순되게도 그 와중에 스탠딩이 너무 가깝고 쾌적해보여서 저기 갈걸 생각도 3초 정도 함. 그래도 공연장 안 돌면서 구경도 하고 피자도 먹고 화장실도 다녀오니까 공연 시작 한 10분 전에 숙취가 완전히 가시고 컨디션이 원점이 됐다. 이때부터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고, 암전되고 삐그덕 나오니까 다들 소리지르고 떼창하는데 아 그래 여기구나 내 나라. 인종 성별 국적 상관없이 우린 다 엔시티즌이구나. 모드가 됐다. 마지막에 get out of my way 부분만 따라하고 부딪히다간 삐긋해는 못따라하는건 좀 귀여웠다만. 물론 나도 영귤러 떼창 못했다ㅎ
공연 자체는 당연히 완벽했다. 해투 도는거 피곤할법도 한데 라이브도, 소통도 꼬박꼬박 해주는 그들이 무대라고 대충 할리가 없다. 2시간 반 내내 완빡으로 무대하는데 여유까지 생겨서, 또 자리도 너무 가까워서 그 모습을 온전히 눈으로 담을 수 있어 황홀했다. 특히 마크는 팬들도 멤버들도 우리 마꾸 웰컴홈♡ 폭격을 날리니까 완전히 녹은 고양이 모드가 되어서 너무너무 착하게 웃고 귀여웠다. 마지막에 우리 구역 쪽 보고 인사할때 내가 너무 벅차서 손하트 만들어서 보여줬는데 왠지 본것 같았다.. 아닐수도..
마크의 엔딩멘트 녹화해둔걸 방금 다시 보고 감탄했던 포인트가 생각났다. 겨우 7살까지 살았던 도시에서 웰컴홈 소리를 저렇게 듣는게 살짝 머쓱 뻘쭘하진 않을까 했는데, 마크는 그걸 '난 사실 토론토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여러분들 덕분에 이제 토론토를 떠올리면 엔시티즌도 함께 떠오를 것 같다'고 전혀 다른 방향에서 아주 근사하게 표현하더라. 또 마지막엔 '캐내디언으로서 이 자리에 서게 돼서 영광'이라고 마무리.. 넌 진짜 대통령감이다🤦‍♂️
서울 모멘텀이 극찬을 받은 지점은 멤버들의 무르익은 실력, 셋리의 완벽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고척이라는 대형 공연장을 채운 대담하고도 섬세한 연출이었다. 투어 시작인 동남아에서부터 연출이나 무대장치가 서울보다는 덜어내졌는데, 북미까지 와서는 이제 살아남은 요소들이 별로 없었다. 댄서들도 없고, 무대장치는 대부분 전광판 배경으로 대체됐고, 레이저도 있긴 했지만 서울에서처럼 존재감이 크진 않았다. 게다가 토론토든 시카고든 공연장 자체가 되게 어두워서 자리가 가까웠는데도 멤버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고, 조명 연출을 쓰면 쓸수록 이 단점은 극대화됐다. 음향도 내 기준 너무 울리는 편이었다. 결국 모멘텀의 특장점을 다 걷어낸, 걍 무대 바닥이랑 전광판이랑 127 실력만 띨롱 남아서 기본 재료만 가지고 끓여낸 공연이었는데 그런데도 그게 너무 좋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던 것도 있다. 발라드 섹션에선 그 목욕탕 음향에서 멤버들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는데, 서울 때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다듬어진 가창이었고 특히 윤슬에서 도영이가 새로운 애드립을 쏴줬는데 좋아서 미치는 줄 알았다.

- 그 외
토론토를 택한 이유는 마크 고향인 캐나다여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동생(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 그래서 숙소 걱정은 안 해도 됐다. 불행히도 내가 있는 일주일 내내 토론토는 영하 15도거나, 날씨가 좀 풀린다 싶으면 비가 오거나 강풍을 동반한 눈이 몰아쳤다. 이러다가 시카고 가는 아침에는 또 눈부시게 해가 나서 화를 두배로 돋궜다. 그리고 나 한국 오는날 날씨 풀렸다더라. (동생님: 어쩌라고 니가 공연 본다고 이때 온거잖아!)
예전에 몇번 캐나다에 갔을 땐 심적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했고, 부모님도 캐나다 계실 때라 여행이라기보단 부모님 집에 다녀온다는 느낌으로 반 요양인 여행을 했었다. 몬트리올도 5월에 눈오고 그랬었는데, 날씨 추우면 어때?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자~ 마인드였다. 근데 그땐 부모님 마일리지로 산 비행기였고, 이번에는 100% 내돈내산으로 가는 여행이다보니 웃기고 치사하게도 그런 여유로운 마인드가 안생기더라. 눈이오든 바람이 불든 개춥든 그냥 목도리 싸매고 나가서 '내가 다시는 여기 오나봐라' 이러고 독기넘치게 돌아다녔다. 근데 내 몸뚱아리는 예전보다 7년 더 늙었고, 시차 때문에 잠도 거의 못자고 다녀서 막판엔 몸이 거의 헐어버렸다. 그렇게 다녀서 그런지 날씨 좋을 때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래 토론토는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더 크다. 사실 토론토가 워낙 노잼시티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엑기스라고 생각한 온타리오 미술관과 토론토대학 인근 동네는 기대에 부응했다. 떠올리니까 또 날씨 좋을때 다시 가보고 싶기도 하네.. 해 뜰 때 빌리비숍 공항 진짜 예뻤는데, 하버프론트도 그런 분위기인거면 좀 궁금하긴 하다.

 

아! TTC에서 쫓겨나는 경험 못해봐서 아쉽다. 내가 탄 노선은 다들 너무 성실히 운행하더라 ^^;
사실 이번 여행은 토론토 그 자체보단, 짧게나마 동생들이랑 셋이서 시간 보냈다는 의미가 더 크다. 내가 직접 보고 듣지 않으면 아무리 가족이어도 남의 고민이나 인생에 관심 기울이기가 쉽지 않으니까, 또 나랑 너무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고 얘기도 들어주고 주변 사람들도 만나보고 한 게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에 캐나다든 미국이든 갈때는 영어공부 좀 더 해서 가야겠다. 스피킹이 완전히 그냥 신생아 수준으로 퇴화했다.

집 근처 동네
올드 토론토
마피아놀이 ㅎ
토론토 대학 건물들과 인상적이었던 Royal Conservatory of Music 건물

 
4. 시카고 (3/7-3/8)
- 공연 후기
Allstate Arena 와보니까 스코샤뱅크 아레나는 선녀였단 걸 알게됐다. 물론 내가 공연 10분 전에 공연장 문앞에 도착하느라 내부를 제대로 못들여다봐서 그럴 수도 있긴 한데, 그냥 웬 컨테이너 같은 건물이 있고 게이트 들어가면 바로 공연장 내부가 나온다. 이날 눈와서 그런진 몰라도 주변 환경과 시설 자체가 되게 을씨년스럽고 폐건물같았다. 어우 미국😰
토론토 때 공연 운영에 이골이 나기도 했고, 눈오는데 시카고 시내 관광하느라 완전히 지쳐버려서 공연 시작 바로 직전에 우버 타고 갔다. 사실 별로 안걸리길래 한 7시 20분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뒤늦게 부르려니까 배차가 안되는거다. 배차된것도 취소되고 이래서 더 비싼 옵션으로 부르려니 무슨 추가 인증하라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막판에 아주 환장이었다. 어찌저찌 탔는데 우버기사가 코앞에 있는 공연장을 빙 돌아가서 그 상황이 답답하기도 한데, 공연장 못갈까봐 잔뜩 위축됐던 게 긴장이 풀리기도 했고 몸이 진짜 한계 이상으로 힘들어서 서러움이 폭발해 택시 안에서 질질 짰다. 여행 내내 잠을 거의 제대로 못자고 돌아다녔는데, 시카고 간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눈맞으면서 하루종일 다녔으니.. 한국이었으면 도저히 공연을 볼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는데 공연 보려고 나 거기 간거잖아. 비행기, 숙소, 폭설 뚫고 시카고 관광 이런 거 다 공연 아니었으면 없었을 거잖아. 그래서 안갈수가 없잖아. 공연 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웠던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독립심 강한 사람이어도, 동생들이랑 같이 있던 캐나다랑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미국은 컨디션이랑 마인드셋 자체가 달랐다. 미국에서의 짧은 1박 2일동안 난 거의 뭐 에드워드 호퍼 그림 속 주인공이었다...

Allstate Arena 113구역 D열 시야


토론토가 왼블이어서 이번엔 오블을 가보자는 생각과, 그래도 스탠딩을 하루는 가봐야 하나라는 생각, 고척에서 연출을 겪고나니 중앙에서도 한번쯤 봐야되나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과 고민을 거듭하다 사이드 오블 좌석을 예매했다. 그래도 멀리까지 왔는데 너무 먼 자리는 아쉽고, 서울 앙콘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스탠딩은 자신이 없다는 마음 때문에 나름대로 타협한 결과가 이 자리였다. 토론토는 돌출 나오면 옆모습이 보이는 완전 사이드였는데 여기는 이목구비는 안보이는 대신에 좀 더 전체적인 연출이 보였다.
이날은 나도 컨디션이 별로였지만 애들도 토론토보다는 좀 힘들어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겪은 시차적응과 추위를 애들도 똑같이 겪었으니, 거기다 애들은 공연까지 했으니 당연히 지칠 수밖에. (그래서 아래의 귀여운 칼퇴보이 짤이 등장) 근데 시카고 팬걸들 환호는 내가 가본 공연 중에 역대급이었다. 이러다 난청 오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리를 엄청나게 지르더라. 나라 특성도 있을거고 쟈니's 걸들의 특성이기도 했던 듯. 그래서 애들도 거기에 부응하려고 어떻게든 에너지를 끌어올려서 무대하는게 눈에 보였다. 아이고 우리칠아..

칼퇴보이 김도영 혼자 뒤돌아서 퇴장 준비 중 ㅋㅋㅋㅋ
칼퇴보이 김도영 혼자 저기 띨롱 올라가있는게 너무 웃기다
The hottest guy from the hottest city~
누가 막내인지 찾아보시오.jpg

 

The hottest guy from the hottest city~를 말하는 김도영의 모습 (왓?)


- 그 외
처음에 미드웨이 공항에 내려서 오렌지 라인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갔는데, 다운타운 들어서기 전까지는 무슨 좀비 영화 찍는 줄 알았다. 일단 지하철에 나밖에 안탔고, 나중에 좀좀따리 타는 사람들도 다 좀비 or 신체강탈당한 사람처럼 보였고 거리 풍경은 버려진 도시 같았다..

나밖에 없음


거기다 도착하자마자 내리기 시작한 눈발은 하루 종일 계속됐다. 한국은 눈이든 비든 좀 퍼붓고 나면 잦아들거나 그쳤다가 다시 온다거나 이런 식인데 여기는 아예 한 순간도 안멈추고 계~속 오더라. 다운타운 도착해서 점심먹으러 들어갈때까진 머플러 머리에 칭칭감고 버텼는데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서 나와서 편의점에서 우산 샀다.

(좌) Lou Malnati's Pizza (우) 시카고미술관 1층의 'American Window'
모멘텀 커피?!
시티즌 호텔?!?!



어떤 점에선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여행지로 남을 것 같다. 여름에 꼭 다시 와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