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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2023)

s0mersault 2023. 8. 16. 15:15

왜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두 청문회'라는 계기를 통해 보여줘야 했나? 올컬러인 「오펜하이머의 청문회」와 흑백인 「스트로스의 청문회」의 병치는 무엇을 의미하나?

이에 대한 답은 또 다시 놀란이 천착해온 그 주제, '윤리적 딜레마'에 도착한다. 요컨대 오펜하이머는 윤리적 딜레마와 그 곤란, 즉 정답을 내거나 옳고 그름을 단순히 가릴 수 없는 문제들을 맨하탄 프로젝트를 경과하며 스스로 체험해낸 사람이며, 따라서 그 딜레마를 마주하고 비로소 인식한 인간이다.
개인적 복수심으로 인한 무고 또는 마녀사냥의 외피를 쓴 오펜하이머의 청문회는 일견 원색적 비난이나 고발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 중요한 딜레마적 질문들(원폭은 되는데 수소폭탄은 왜 안되나? 다시 돌아가도 맨하탄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인가? 정말 그것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차악'이었는가?)을 내포하고 있다. 스트로스가 그를 고발한 동기는 사적인 복수심이었으나, 오펜하이머에게 진짜로 던져진 질문, 그가 스스로 받아들인 청문회의 의미는 결국 언젠가는 그가 직면해야만 했던 딜레마 그 자체이다. 또한 그는 실험으로 이론을 입증하고 수정하듯이, 프로젝트를 통과하며 이전의 답을 의심하고 재검토한다. 딜레마에 맞서는 이러한 그의 자세는 물리학자로서 그의 자질이자 숙명(마치 그에게 공산주의 또한 '학문적 탐색'의 대상이었던 것처럼)인 동시에, 일종의 과학행정가로서 그가 맞닥뜨렸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다.
반면 스트로스는 그가 들을 수 없었던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대화(사실은 '더 중요한 것'에 대한 이야기였던)를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억측했듯이, 자신의 고발이 의도치않게 드러낸 중요한 질문들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 그는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말 그대로 '흑과 백'의 인간이다. 혹은 그런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 이 영화는 오펜하이머의라는 인물, 그의 실체를 불충분하게 담고 있는가? :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물리학자(과학자)라는 정체성은 그의 직업일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성, 즉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기도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앞서 '과학행정가'라고 표현했듯이, 그는 과학자 중에서도 '이미 있는 연구 성과들을 종합해내고, 핵심을 통찰해내 적용하는' 종류의 과학자였고(마치 경제학계에서 새뮤얼슨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그에게 이중의 딜레마 - 과학이 현실에 적용될 때, 이 현실에 어디까지,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 - 를 부과한 것으로 보인다.

 

- 이 영화는 여성 등장인물을 부당하게 활용하고 있는가? :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여성 캐릭터들을 포함해 어떤 조연들보다도 오펜하이머라는 한 명의 인물이 중요한 영화이다. (그 다음으로는 그의 거울상으로서 스트로스) 그 이외의 인물들은 그 인물이 얼마나 정교하고 매력적으로 묘사되었는가와는 상관없이 주제에서의 중요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다만 여성 캐릭터들이 과학적 성과에 얼마나 기여하는 것으로 그려졌는가/ 베드씬이 필요했는가 불필요했는가라는 논쟁과는 별개로, 그로브스와 같은 남성 조연 캐릭터들에게서 느껴지는 깊이나 인간적 통찰을 여성 캐릭터에게서는 그만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