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 2

패터슨 (2016)

나에게 남아있는 짐자무쉬에 대한 인상은 중학생 시절 동성로의 동굴 같은 독립영화관을 찾아가서 봤던 였는데, 이는 어떤 소품, 단상 또는 메모와 같은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에 다른 작품을 볼 마음은 크게 없었던 것 같고, 도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내가 흥미를 가질만한 종류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왔다.성수 무비랜드에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5월 초 노동절을 맞아 전태일의료센터와 협력해서 공간을 꾸며놨다고 해서 이번엔 꼭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스케줄에 맞는 영화를 아무거나 예매했다. 그게 이었다.음악을 들을 때면 항상 신비롭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예컨대 a-b-a와 같은 구조에서 b가 등장하기 전의 a와, 'b를 비로소 경과한 a'는 서로 완전히 같은 a임에도 매우 다르게 ..

Archive 2025.05.29

이반 일리치의 죽음

p72 이반 일리치를 제일 괴롭힌 것은 거짓이었다. 왠지 모두가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저 아플 뿐 죽어 가는 것이 아니며, 잠자코 치료를 잘 받으면 뭔가 아주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묵인하는 거짓말 말이다. 그는 무슨 짓을 하든 더 괴로운 고통과 죽음밖에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를 괴롭힌 것은 거짓이었다. 즉 모두가 그들 자신도 알고, 그도 아는 사실을 부인해 가며 오히려 그의 끔찍한 처지를 두고 거짓말을 하려 들 뿐 아니라, 그에게마저 거짓에 동참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거짓, 그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 일어나는 저 거짓, 저 무섭고 장엄한 죽음이라는 사건을 병문안과 커튼과 만찬의 철갑상어 수준으로 격하해 버리는 저 거짓이야말로…… 이반 일리치는 괴롭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묘한..

Archive/책 2025.05.25